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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예배의 유래 - 기독교인이라면 필독!! 본문

진짜 이야기/불법과 거짓

일요일예배의 유래 - 기독교인이라면 필독!!

✅ 가지런히 2020. 12. 27. 23:21

≫≫일요일 예배의 유래를 알아보자!≪

일요일예배의 유래 @pixabay.com

일요일예배의 유래를 아는 기독교인이 얼마나 될까요? '주일은 쉽니다'라는 상점의 팻말을 통해 주인이 기독교 신자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상점의 주인조차도 왜 일요일에 예배를 봐야 하는지 왜 일요일에 상점 문을 닫아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간혹 예수님의 부활이 일요일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일요일에 예배 본다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그게 정답일까요? 기독교인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되는 일요일 예배의 유래를 살펴보겠습니다.

1. 일요일예배의 유래 - 미트라교의 성일이 일요일(Sunday)

일요일 예배의 유래를 살피려면 태양신 미트라교에 대해 알아보아야 합니다. 로마에서 초기 기독교가 핍박받던 것과 다르게 당시 로마인들에게 환영받는 종교가 있었습니다. 태양신 미트라를 숭배하는 종교였습니다. 미트라교는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에서 파생된 종교입니다. 미트라교의 성장은 로마군이 많이 주둔해 있던 라인 강과 다뉴브 강을 따라서 진행되었습니다. 로마 국경 곳곳에 미트라교의 성전과 사당이 들어섰습니다.

미트라교는 기원전 1세기경 로마에 들어왔습니다. 1세기의 유명한 역사가 플루타르코스에 의하면 미트라교를 처음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시실리 해 인근에 살던 해적과 도둑떼였다고 합니다. 이후에 이 해적들을 소탕한 로마 군인들이 미트라교를 받아들이고 로마제국 전역으로 미트라교를 전파했습니다. 기독교가 로마에 전파되었을 무렵에 미트라교가 로마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였습니다.

"미트라(메흐르) 교를 받아들인 첫 번째 사람들은 시실리 해 인근에 살던 해적과 도둑떼였다. 이후에 이 해적들을 소탕한 로마 군인들이 미트라교를 알게 되었다. 이들은 로마제국 전역으로 미트라교를 전파했다. 이들 외에도 시리아 상인들과 군인들도 이 종교를 받아들인 그룹 중에 하나이다."[네이버 지식백과] 유럽에서의 미트라교 (페르시아의 종교, 2010. 5. 25., 유흥태)

태양신 미트라는 '정복 불가능한 신' 또는 '불멸의 젊은 신'으로 묘사되어 초반에 군인층에서 열렬히 신봉되었습니다. 이후 귀족과 황실에 받아들여져 제국과 황제의 수호신으로 격상되었습니다. 3세기 무렵에는 미트라교는 로마의 공식 종교가 될 정도로 그 세가 커졌습니다. 그런데 이 로마 태양신교 즉 미트라교의 성일이 바로 일요일(Sunday)이었습니다.

[기독교 대백과사전 제14권] 기독교 대백과사전편찬위원회, 기독교문사, 1998,116쪽 ③ 이교종교들에서 일요일의 우월성 : 기독교 시대 초기에 로마제국에서, 특히 로마 군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게 되었던 수많은 동방 종교들 가운데 하나가 페르시아로부터 수입되었던 미드라 종교였다. 미드라는 태양의 신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해 미드라교는 일요일을 성일로 간주했다.

2. 일요일 예배의 유래 - 일요일예배를 주장한 로마교회

일요일 예배의 유래를 살피다보면 로마제국유대인들의 갈등이 심화되어 그 파장이 기독교인들에게 번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 제국의 통치자들은 유대교를 싫어하였습니다. 다신교 국가인 로마인들의 관점에서는 형상도 없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한 분 하나님만을 믿는 유대인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더 나아가 유대인들은 신앙을 이유로 로마의 명령을 잘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이라는 소수 민족에 국한된 종교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민족과 상관없이 복음을 열정적으로 전하는 기독교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다신교를 믿는 로마인들에게도 미움을 받았습니다. 결국 로마 제국의 통치자들에게 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로마 제국과 유대인들의 갈등이 심화되어 두 차례의 유대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로마의 입장에서 보면 두 차례나 반란을 일으킨 셈이어서 로마인들은 유대인들을 박해하는 정책을 취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또한 유대교와 같이 유일신 신앙이었고 안식일은 동일한 일곱째 날이었기 때문에 기독교에 대한 핍박은 더욱 가중되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새 언약의 안식일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로마교회의 기독교 신자들은 박해의 요인을 줄이기 위해 안식일 대신에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기독교가 유대교와 다르다는 것을 로마인들에게 인식시키려 하였습니다.

오랫동안  유대교와 유대인들에게 핍박을 받은 기독교 신자들이 쉽게 호응하였습니다. 또 일요일을 성일로 간주하는 로마인들의 환심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미트라교의 태양 숭배일인 일요일이 로마교회의 예배일로 둔갑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사도들의 본을 무시하고 사람의 의견을 더했습니다.

3. 일요일 예배의 유래 - 일요일 휴업령 이전에 안식일을 지킨 역사

일요일 예배의 유래는 2세기경에 모든 교회가 일요일 예배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교회들은 미트라교의 태양신 숭배일을 2세기부터 예배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동방교회들은 321년에 황제의 일요일 휴업령이 내려질 때까지도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습니다.

[교회사] 송낙원 저, 이건사, 1981.101쪽 -  제2기 사도 후 시대(100~313년) 예배의 시기로는 주 예배로서 안식일 예배가 이 시각까지 계속되었으나 말기에 점차로 주의 첫날 즉 일요일로 대용케 되었다.
[교회사] 김의환 감수, 세종 문화사, 1992.145쪽 - 콘스탄틴 대제는 처음으로 칙령을 내려 일요일에 정무와 사법의 일을 쉬게 하고 이어서 이날에는 군대의 조련, 공연물의 관람을 금지하였다 그러나 구약의 안식일의 제도를 그대로 일요일로 옮기려고 하지는 않았다. 동방에 있어서는 토요일을 안식일로서 지켰다.

4. 콘스탄티누스의 정책과 일요일 휴업령

콘스탄틴누스@pixabay.com

일요일 예배의 유래에 있어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313년)은 기독교의 대전환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공인하고 옹호하는 정책을 펼쳐나갔습니다.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우대했다고 해서 그가 완전히 기독교로 개종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죽을 때까지 폰티펙스 막시무스(Pontifex Masimus)라는 로마 종교계의 최고 제사장 직위를 소유했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정치적인 입장에서 제국 전체를 하나로 묶어줄 종교로 기독교를 선택했습니다. 그가 가장 좋아했던 불멸의 태양신 미트라와 그리스도를 동일한 신으로 이해했습니다. 주후 321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칙령이 내려집니다. 존엄한 태양의 날(Sunday)에 쉬게 하는 일요일 휴업령을 내렸습니다. 로마교회(천주교)가 로마 태양신교의 성일인 일요일을 예배일로 받아들였습니다. 로마 태양신교 즉 미트라교의 성일이던 일요일이 기독교의 예배일로 둔갑했습니다.

[교회사 핸드북] 라이온사 편, 송광택 역 생명의 말씀사, 1991.130~131쪽  콘스탄틴은 폰티펙스 막시무스(Pontifex Masimus-로마 종교계의 최고위직)라는 이방 대제사장의 칭호를 계속해서 지니고 있었고 10년 동안 그의 화폐에는 그가 가장 좋아했던 신으로 보이는 불멸의 태양이라는 이방신의 상징이 나타나 있었다. ··· 콘스탄틴은 이전의 종교인 태양 숭배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 콘스탄틴은 어떤 점에 있어서 태양과 기독교의 하나님을 계속적으로 동일시했었다.
[교회사(초대 편)], J.W.C완드 저, 이장식 역, 대한 기독교서회, 2000,192쪽  콘스탄틴은 다스려 가면서 점점 더 그리스도교인을 지지하였고, 그리고 그의 목적은 그리스도교가 전 제국을 하나로 묶어 줄 시멘트가 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고 우리가 결론을 지을 수 있다.
[교회사 핸드북] 라이온사 편, 송광택 역, 생명의 말씀사, 1991, 144쪽  "모든 재판관과 시민 그리고 기술자들은 존엄한 태양의 날(Sunday)에 쉬어야 한다. ··· 주후 321년 3월 7일" - 콘스탄틴의 칙령

황제의 칙령 속에 나타난 '존엄한 태양의 날'이라는 표현을 볼 때, 일요일 휴업령은 로마의 기독교인들뿐 아니라 미트라 교도들을 배려한 칙령이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일요일을 신성시하는 기존의 태양신교와 하나님의 가르침을 떠나 일요일 예배를 지키고 있던 서방 교회를 통합하는 묘책으로 일요일 휴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므로 일요일을 성일로 여기던 미트라 교도들도 이 칙령을 반대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일요일 휴일 제도와 일요일 예배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교회사(초대 편)]J.W.C완드 전, 이장식 역, 대한 기독교서회, 2000,193쪽  '이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의의를 가진 것은 321년에 일요일을 예배의 날로 규정한 법령을 내린 것이다. 이 법령은 주의 날을 이교의 제전 일과 동등한 수준의 절기로 인정한 것이며, 일요일은 일을 중지하는 것으로 그 특색을 나타내었다. 그러나 이 날은 어떠한 그리스도교적인 명칭을 가진 것이 아니고 다만 단순히 참된 경일이라고만 불렸는데 여기에 대하여 이교도들이 반대할 도리가 없었다."
※ 영어 원문에는 '참된 경일'이 아니라 라틴어로 'dies venerabilis solis(존엄한 태양의 날)'이라고 기록되어 있음.

일요일 휴업령은 로마교회의 위치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321년 이전까지는 로마교회와 그 영향력 아래 있었던 일부 교회들만 일요일 예배를 지켰습니다. 하지만 321년에 선포된 일요일 휴업령은 황제의 권위로 제국의 모든 신민이 일요일에 쉬도록 강제하였습니다. 이는 안식일을 준수해오던 동방의 교회들까지 로마 태양신교에 굴복하였습니다.

과거 로마 황제들의 기독교 박해는 기독교를 확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우대 정책은 오히려 기독교를 이방 종교와 혼합하여 변질시키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1700년 동안 지켜온 일요일 예배는 비성경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지키지 않으셨고 사도들도 지킨 적 없는 태양신교의 규례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은 성경의 안식일을 찾아 지켜야 하며 태양신교의 성일이었던 일요일(Sunday)을 '주일'로 지켜온 불법을 하나님 앞에 자복하고 회개해야 합니다.